도서추천 – 139 82년생 김지영 (소설)
<귀를 귀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10년 동안 일한
방송 작가답게 서민들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비극을 사실적이고 공감대 높은 스토리로 표현하는 데
특출 난 재능을 보이는 작가는 신작 <82년생 김지영>에서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주인공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 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는 이 소설은
1982년생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핍진하게 묘사한다.
…
이를 통해 작가는 제도적 성차별이 줄어든 시대의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어떻게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고 억압하는지 보여 준다.
여권이 신장된 시대, 그러나 여전히 ‘여성’이라는 조건이
굴레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인생을 다룬
<82년생 김지영>은 조용한 고백과 뜨거운 고발로
완성된 새로운 페미니즘 소설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자료로 이루어진 ‘목소리 소설’이다.
“우리 모두의 김지영 “
김지영 씨는 1982년 4월 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주부였다.
위로 언니가 있었고 아래로 남동생이 있었다.
여중, 여고를 다니면서 ‘여자라서 겪는’ 몇 번의 사소하고
불쾌한 순간들을 경험했고 애써 잊었다.
언니 김은영 씨는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는
부모님의 권유 대로 교육대학에 진학했다.
김지영 씨는 인문대를 나와 홍보대행사에 취업했고,
아침마다 팀원들 자리에 취향에 맞춰 커피를 타서 올려놓았다.
직장 생활을 하다 출산을 하며 고민 끝에 퇴사를 했다.
어디서든 찾아볼 법한 삶의 궤적이다.
방송작가 출신 소설가 조남주는 논문, 기사, SNS 등에서
채집한 풍부한 사례를 인용해
김지영씨의 삶을 의도적으로 보편적인 모습으로 그려낸다.
어느 날 친정 엄마에 빙의해 속말을 뱉기 시작하고,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가족을 아연하게 만든 김지영 씨.
이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상 행동을 상담하던
담당의사의 리포트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여성의 입으로 다른 여성의 입장에서 ‘말’을 한다는 설정이 의미심장하다.
“배불러까지 지하철 타고 돈 벌러 다니는 사람이 애는 어떻게 낳아?”
같은 말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같은 김지영 씨의 말이 서술되고,
그 말은 우리가 아는 또 다른 김지영 씨의 얼굴과 겹쳐진다.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 소설 MD 김효선 (2016.11.01)
P. 14
그 이후로도 이상한 징후들은 조금씩 있었다.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귀여운 이모티콘을 잔뜩 섞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분명 김지영 씨의 솜씨도 취향도 아닌
사골국이나 잡채 같은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정대현 씨는 자꾸만 아내가 낯설어졌다.
아내가, 2년을 열렬히 연애하고
또 3년을 같이 산, 빗방울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
P. 17
“얘, 너 힘들었니? “
순간 김지영 씨의 두 볼에 사르르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다.
정대현 씨는 불안했다.
하지만 화제를 돌리거나
아내를 끌어낼 틈도 없이 김지영 씨가 대답했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잠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
P. 32
“은영 아빠가 나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P. 116
김지영 씨는 얼굴형도 예쁘고 콧날도 날렵하니까
쌍꺼풀 수술만 하면 되겠다며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충고인지도 계속 늘어놓았다.
남자 친구가 있느냐고 묻더니 원래 골키퍼가 있어야 골 넣을 맛이
난다는 둥 한 번도
안 해 본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여자는 없다는 둥 웃기지도 않는
19금 유머까지 남발했다.
…
P. 128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요.
다 하면서 배우는 거죠. 지영이가 잘할 거예요.”
아니요, 어머니, 저 잘할 자신 없는대요.
그런 건 자취하는 오빠가 더 잘하고요,
결혼하고도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김지영 씨도, 정대현 씨도,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엄마가 되면서 개인적 관계들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배제돼 가정에 유폐된다.
게다가 아이를 위한 것들만 허락된다.
아이를 위해 시간, 감정, 에너지, 돈을 써야하고,
아이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자격을 의심 받는다.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많이 들었던 책이지만,
나의 미래이기도 하고
엄마의 과거이기도,
엄마의 현재이기도한,
그런 책이었다.
주변에게 잘하려면 일단
나한테도 최선을 다해야하지 않을까.
82년생 김지영_독서감상평입니다.